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롯데 자이언츠/역사 (문단 편집) ==== [[롯데 자이언츠/1993년|1993 시즌]] ==== 전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축 멤버들이 건재했기에 2년 연속 우승을 노려볼만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시범경기부터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무 6패로 꼴찌를 하며 불안함의 전조를 보였다. 1차 지명 신인 투수 [[김경환(야구선수)|김경환]]은 개막하기도 전에 어깨 통증으로 이탈했고, 시즌이 개막하자 전 시즌 팀타율 1위의 타선이었다는게 믿게지 않게 [[박정태]]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무기력증에 빠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시즌 팀 홈런수가 꼴랑 '''29개'''에 그쳤을 정도였다. 이 한 시즌 최소 팀 홈런 기록은 KBO 리그가 망하기 전까지 영원히 깨지지 않을, 다른 의미에서의 대기록이다.[* 물론 이 시즌은 비단 롯데뿐만 아니라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탓에 다른 팀들도 미친듯이 타격이 하락한 해이긴 했다. 그나마 삼성 정도가 괴물신인 [[양준혁]]과 부활한 [[김성래]]를 축으로 위력적인 타격을 보유했을 뿐...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이 시즌 롯데의 타격지표 하락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팀타율도 .248에 그쳤고 전술했듯이 한 시즌 팀 홈런 29개는 그 무슨 말로 쉴드를 쳐도 쉴드가 되지않는 막장 기록이다. 그나마 [[김민호(1961)|김민호]]가 11개의 홈런으로 간신히 두 자릿수 홈런을 쳐서 망정이지 김민호 아니었으면 한 시즌 내내 두 자릿수 홈런 타자가 아무도 없는 기록까지 함께 작성될 뻔 했다.] 그래도 투수진의 분전으로 꾸준히 중위권을 유지했으나, 전해 신인왕 [[염종석]]의 동계훈련 부족으로 인한 소포모어 징크스가 매우 뼈아팠다. 한국시리즈 MVP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도 이 시즌 방위복무 탓에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이 시즌 롯데에 타격을 입힌 사건은 5월 23일 사직 태평양전에서 박정태가 주루플레이 도중 발목 복합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고 그대로 시즌아웃 되어버린 것. 당시 .359의 타율로 타격 랭킹 1위를 질주하며 롯데 타선을 홀로 떠받치다시피한 박정태의 이탈이 매우 컸다.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할 정도로 투수진이 분전했음에도 결국 4강싸움에서 조금씩 멀어진 뒤, 시즌이 종료될 때는 빙그레에게 5위마저 내주고 62승 63패 1무의 성적으로 6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나마 [[윤학길]]과 [[김상현(1968)|김상현]]이 각각 12승에 3점대 평균자책점의 성적으로 선전했으며, 특히 [[윤형배(1969)|윤형배]]가 이 시즌 14승 9패 1세이브 2.46의 평균자책점으로 팀의 1선발이자 에이스로 각성한 것, 전준호가 75개의 도루로 도루 신기록을 쓰며 1위에 오른 것, 이 시즌부터 주전급으로 도약한 내야수 [[김민재(내야수)|김민재]]와 외야수 [[김종헌(야구선수)|김종헌]]의 발굴이 위안이었다. 시즌이 종료되고 [[강병철]] 감독은 그간 누적된 구단과의 마찰로, 부산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롯데와 재계약하지 않고 [[한화 이글스]]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롯데는 후임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용희]]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